“토지 작업 후 착공에 못 들어간 사업장이 근처에만 세 곳이나 돼요. 공사비와 금리 따지면 수지타산이 안 맞죠.”(서울 강서구 화곡동 A공인 관계자)
작년 빌라 전세사기 피해가 유독 심했던 강서구는 연립·다세대주택이 7만2876가구에 달하는 ‘빌라’ 밀집 지역이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강서구의 연립·다세대주택 착공은 16가구로, 전년 동기(507가구) 대비 97% 급감했다.
서민 주거 사다리인 빌라·오피스텔의 ‘공급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 공사비 인상 등으로 공급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 빌라 사기 여파로 수요자도 끊겼다. 신규 매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공급난에 따른 1~2인 가구의 전·월세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건축허가를 받아도 공사를 늦추는 현장이 적지 않아 공급난이 해소될 기미가 안 보인다. 2022년 1~11월 전국 연립·다세대주택 인허가 물량은 4만2803가구에 달했지만, 지난해 준공 물량은 3만660가구에 그쳤다. 1만 가구 이상이 아직 착공도 못 했거나 공사 중이라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착공신고 이후에 공사를 미루는 사업장이 많아 예측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청년층이 선호하는 도심권의 직주근접 소형주택 공급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중구에서 도시형생활주택(30가구 이상 기준) 780가구가 분양했다. 하지만 2021년엔 282가구로 뚝 떨어지더니, 2022년 이후 공급이 전무했다. 젊은 수요층이 외곽으로 밀려 주거의 질이 나빠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빌라·오피스텔의 ‘큰손’인 임대사업자를 옥죄는 규제가 ‘공급 가뭄’의 원인으로 꼽힌다.
신축 빌라·오피스텔이 자취를 감추자 극심한 수급 불균형 속에 주거비 부담은 커지고 있다. 서울에서 50만원대 월세의 오피스텔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정보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텔 월세 거래 중 고가(월 임대료 60만원 이상) 계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45.8%에서 2022년 54.1%, 작년(1~11월 기준) 60.5%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서울 빌라 월세도 작년 7월부터 매달 오르고 있다. 비아파트 주택 공급 감소로 갈 곳을 찾지 못한 서민이 아파트로 몰리면서 전·월세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광진구 중곡동 K공인 대표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의 보증이 되는 물건이 거의 없다”며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높이는 계약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박진우/이인혁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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